합천 이씨
(陜川 李氏) |
시조(始祖) : 이개(李開) |
시조 이개(開)는 신라에서 벼슬하여 강양군(江陽君, 강양은 합천(陜川)의 옛이름(古號))에 봉해졌고 고려가 건국되자 절의를 지켜 태조의 부름을 거역,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합천 호장(戶長)으로 옮겼다. "문충공사적기(文忠公事蹟記)"에 보면 그는 최치원(崔致遠)의 문인으로 유학의
진흥에 힘써 그 공으로 강양군에 봉해졌으며 박경엽(朴敬燁)의 난을 토평, 다시 문학을 진흥시켜 중국에 버금가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는 신라 초기의 6촌 가운데
알천양산촌(閼川陽山村)의 수장이었던 알평(謁平)의 후손으로, 따라서 합천이씨는 경주이씨(慶州
李氏)에서 분적된 성이다.
이개가 합천 호장을 지냈고 그곳에서 죽은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여
합천을 관향으로 삼아 계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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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세계(世系)가 복잡하다.
·전서공파(典書公派 : 守全) : 가장 번창하였다. ·목사공파(牧使公派
: 公柱) ·참지공파(參知公派 : 良眞)
·전객령공파(典客令公派 : 琳)등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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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이윤검(允儉) 이희민(希閔) ·이희증(希曾)
·이희안(希顔)의 3형제 : 전객령공파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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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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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경남 합천군 일원
경남 산청군 일원
전북 옥구군 나포면 장상리
경남 하동군 일원
경남 거창군 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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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경남
합천(陜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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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호(鎬) 수(銖) |
순(淳) 식(湜) |
근(根) 두(枓) |
렬(烈) 엽(燁) |
재(在) 재(載) |
석(錫) 용(鏞) |
태(泰) 호(浩) |
상(相) 림(林) |
희(熙) 경(炅) |
배(培) 곤(坤) |
45세 |
4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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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鎭) 순(錞) |
수(洙) 기(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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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98,595명. (1985년) 115,462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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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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