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홍주원(柱元) : 선조의 부마이다. 홍만용(萬容)
: 홍주원의 큰아들,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홍현보(鉉輔)
: 홍만용의 손자, 영조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홍봉한(鳳漢), 홍인한(麟漢)형제
: 현보의 아들이다. 홍봉한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다.
이들 두 형제는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궁중참변의 격동을
맞아 형 봉한은 영조의 실덕(失德)을 힐책하는 시파로, 아우 인환(좌의정)은
사도세자의 실덕을 규탄하는 벽파로 갈리어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정조를 보호한 사람이 홍국영(國榮)인데, 그는 홍주원의
둘째 아들인 홍만형(萬衡)의 5대손으로 정조가 즉위하자 도승지와 숙위대장이
되어 세도정치를 휘두르지만 4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홍양호(洪良浩) : 당대의 뛰어난 학자요 문장가로 '영조실록",
"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의 석학들과
교류하고 돌아와 고증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764년(영조 40)에는
일본에서 벚나무를 들여와 서울 우이동에 심어 경승지를 이루게 하였다.
홍만선(萬選) : 숙종 때의 실학자로 실학사상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는 후일 실학 연구에 커다란 바탕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