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조선정악전습소 양악부를 마치고 동소교사가
되었다. 1918년 도교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업, 귀국후 '봉선화'를
작곡하였고, 1922년 연악회를 창설, 1925년 제1회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한편 음악잡지 "음악계(音樂界)"를 발간했으며, 그동안
소설 "처녀혼(處女魂)"·"향일초(向日草)"· "폭풍우 지난 뒤" 등을
발표, 문학적 재질도 보였다. 1927년 도교 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 2년 뒤 귀국하여 중앙보육학교 교수를 거쳐 1931년 조선음악가협회
상무이사를 지내고 이해 도미, 셔우드음악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하다가
1933년 귀국,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1936년 경성중앙방송국
양악부 책임자가 되어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조직, 서양음악을 보급했다.
작품은 봉선화, 옛동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달마중, 낮에
나온 반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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