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조선 고종 32)에 일제가 명성 황후를 살해하고
일본 세력의 강화를 꾀했던 정변.
삼국 간섭후 조선에서의 정치적 세력이 크게 줄어든
일본은 갖은 방법으로 그것을 만회하려 했으나, 명성황후(明成皇后) 등 민씨 세력이
친러 정책을 고집하자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일본
공사 미우라는 일본인 자객들을 앞세우고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
등 친러 세력을 죽인 다음, 친일파 인물들로 내각을 꾸며 갑오개혁 후
중단되었던 개혁을 다시 단행하였다.
을미사변으로 잔인 무도한 일본의 행동은 국제적으로
여론을 크게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배일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여 의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그러한 배일
감정을 틈타 친러 세력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