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병서를 탐독했다.
1897년(광무 1) 이은찬(李殷燦), 조동호(趙東鎬), 이기하(李起夏)등과
의병을 일으켜 금산·성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던 중 고종황제가
해산을 종용하자 해산하고 귀향했다. 다음해 참봉·성균관 박사·중추원
의관 등을 지내고 1904년 의정부 참찬이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반대의 격문을 돌리다가 체포되어 일본의 회유책으로 칙임관 2등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1907년 의병장 이인영(李麟榮)등과
원주에서 전국의병연합부대를 조직, 서울의 각국 영사관에 서한을 보내고
한국의 정식군대로서의 발족을 선언하고, 이인영이 아버지의 사망으로
귀향하자 의병의 군사장이 되어 일본통감부를 격파하기로 결정, 3백여
명의 선발대를 인솔하고 서울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 이르렀으나 후속부대가
일보군에게 진로를 차단 당하자 포위되어 싸우다가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 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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