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시랑 함규의 5대손이자 상의봉어동정 함덕후의
아들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15세에 서울에 올라와 아버지의
친구인 재상 이준양(李俊陽)의 집에 묵다가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에 이부기관으로서
준양을 따라 대궐을 지켰으며 1135년 서경 반란 대 말단 관리로 종군,
공을 세워 서경유수 녹사가 되었다 그 후 선군기사를 거쳐 보성을 청렴하게
잘 다스렸으며, 의종 때 내시에 들어가 교로도감을 관장하며서 무당을
교외로 추방, 음사를 불지르는 등 미신 타파에 힘썼다. 감찰어사,
황주판관, 삭방도 감창사 등을 거쳐 1170년(명종 즉위) 다시 내시에 불려
들어가 곧 병부낭중이 되었다. 뒤에 성서좌승을 지내고 1179년 공부상서에
이르러 치사했다.
일생을 베옷만을 입고 질그릇을 쓰며 청빈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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