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 (세) |
十一世 |
名 (이름) |
건 |
字 (자) |
공계(公啓) |
號 (호) |
죽오당(竹梧堂) |
諡號 (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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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출생) ~ 卒 (사망) |
1513년 ~ 1584년 |
墓 (묘소) |
전남 나주에서 서쪽으로
五十리 밖 신걸산 복동에 있는데 ,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이며 오향원에 쌍분으로 있다. |
官爵 (관작) 등 |
왕자사부(王子師傅), 예산현감(禮山縣監) |
遺韻 (유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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配 (배필) |
아산이씨(牙山李氏) 돈녕첨정(敦寧僉正)의 귀남(貴男)의 따님으로 슬하에 3남3녀. |
其他 (기타) |
중종(中宗) 8년(1513)
향제에서 태어났으며 개제(愷悌 : 뛰어난 모양)한 용모와 총명한 재주로
촉망을 받았고 8세 때 외가 쪽으로 취학하여 집을 떠났고 3년 동안이나
정성을 궐하자 " 부모님을 떠난지 몇 년이 되었는고 멀리
흰구름만 바라보네 불효한 죄 내 어찌 면하리요? 3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못했으니..." 이때 10세 였다. 그후 당숙부(堂叔父)인 문경공(文敬公)의
남긴 가르침을 이어 받아 성리학(性理學)을 연정(硏精)하고 효제(孝悌)의
도리를 다하였다. |
註 왕자사부(王子師傅) : 조선시대 大君, 王子의 講學을 맡은 벼슬로 학덕이 높은 관원에게 임시로 임명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