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 (세) |
二世 무장(武將) |
名 (이름) |
덕인(德仁) |
字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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諡號 (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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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출생) ~ 卒 (사망) |
1230년 ~ ? |
墓 (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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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爵 (관작) 등 |
좌우위(左右衛)의 정용장군(精勇將軍) |
遺韻 (유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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配 (배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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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他 (기타) |
시조 중랑장공(中郞將公) 휘 보(寶)의 아들로서 고려조 고종조(高宗朝)에 출사하여 관직이 좌우위(左右危)의 정용장군(精勇將軍)에 이르렀다. 당시 고려는 그침없는 몽고(蒙古)의 침략으로 왕은 강도(江都 : 강화도)에 피난해 있었고 대치상황(對峙狀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나라 안의 혼란은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로 아버지 중랑장공(中郞將公)을 모시고 아래로 아들 상장군(上將軍) 서흥군(瑞興軍)을 거느리며 삼대(三代)가 외구내적(外寇內賊)의 토벌에 힘썼다. |
註) 좌우위(左右衛) : 고려 군제(軍制)
중 육위(六衛)의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