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홍의
9세손이고, 호조판서 김순의 손자이며, 영의정에 추증된 김관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문무겸전하고 기우굉대하고 천성이 고매하며
성품이 통달한 달인이고 웅변과 외교에 능란하였으며 악을 미워하고
부정불의를 용납치 않았다.
1420년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한람학사를 거쳐 사간원좌헌납,
병조정랑, 함길도 도진무, 병조참의, 함길도 도관찰사를 지냈으며, 둔전법을
실시하여 큰 성과를 얻었다.
단종 때 형조참판을 거쳐 함길도도절제사로 나가 국방에 공을 세웠다.
세조 때는 공조판서겸군도진무로 있으면서 불의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제거하고
정통인 단종을 복위할 것을 다른 사육신들과 모의하고 또한 그 영도자로서
다른이에게 역할을 분담하여주고 스스로 병력동원을 책임지고 거사를
진행 중 김질의 고변과 성삼문의 자백으로 체포되었다.
세조의 모진 고문에도 상왕과 동지에게 누가 미칠까봐 홀로 끝까지 함국불복
절의를 지키다가 아들 현석과 함께 형사순절 하였다.
영조 7년에 그의 9대손 정구의 송원으로 복관작되고
정조 2년에는 시호를
받고 승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홍문관대제학에 추증되고
1791년에 불천위의 부조묘에 재향하라는 왕명과 또 정려의 왕명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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