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순조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설서, 검열을 거쳐 1823년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고, 헌종 때 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일찍이 24세 때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서 당시의 거유 옹방강 등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학문 연구에
있어서는 실사구시가 요도임을 주장했고, 또한 역대의 명필을 연구,
그 장점을 모아서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한 명필로서 특히 예서, 행서에는
전무후무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림에도 뛰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