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족의 후예로 아버지 김근(覲)은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까지 이른 대관이었다.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직한림, 우사간등을
거쳐 중서사인이 되었다. 1122년(인종 1) 보문각 대제로서
정극영(鄭克永) 등과 함께 '예종실록'을 수찬했고, 1126년 어사대부에
이어 호부상서, 한림 학사승지, 평장사를 거쳐 수사공에 올랐다.
1134년 묘청(妙淸)이 도참설로써 왕을 설득하여 서경에
천도하려고 하자 극력 반대하여 중지시켰고, 이듬해 묘청이 반란을 일으키자
원수로 중군장이 되어 정지상(鄭知常), 백수한(白壽翰)등을 반도들과의
내통 혐의로 죽였다. 그 후 묘청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수충정난정국공신에 검교태보, 수태위,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감수국사,
상주국 겸 태자태보가 되었다. 1145년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의 편찬을 끝내고, 1146년 의종이 즉위하자 낙랑군
개국 후에 봉해졌다.
명문장가로서 문명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중서령에
추증, 인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저서에는 김문열공집(金文裂公集, 20권), 봉사어록(奉仕語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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