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4년(태조 3) 전라 수군첨절제사로서 왜선
3척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 그 후 잠시 유배되었다가 곧 풀리고,
1401년(태종 즉위) 3도 수군절제사 겸 병조판서가 되었다. 이어 세자부사가 되고,
1405년 김해에서 싸우다가 순사했다. 진안의 화천사(華川祠)에
제향되었다.
조선(朝鮮) 태조(太祖) 때 왜구(倭寇)를 격퇴한 공(功)으로 삼도수군 도절제사(三道水軍都節制使)에 올랐다.
그는 1398년(태조 7) 멸악산(滅惡山)에서 왜구를 대파(大破)하고 병조판서(兵曹判書), 정헌대부(正憲大夫)를 거쳐 검교정승(檢校正承)을 지냈다.
우의정(右議政)에 추증되어 낙안(樂安) 삼충사(三忠詞)에 제항(祭享)되었다.
낙안태생으로 군공을 세워 말단으로부터 출세하여 달관에 이르렀다.
1397(태조 6년)
왜구가 침입하였으나 관민이 아무 대책이 없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멸악산 아래서 수 천명의 목을 자르고 남해와 사천까지 추격하여 대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전라도 수군 절도사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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