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1년 생원이 되고, 1456년(세조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봉상시 녹사, 박사, 이조정랑,
종부시정, 직제학,
우부승지를 역임한 뒤 1468년(예종 1) 남이(南怡) 등이 반역을 도모했다하여
이들을 주살한 공으로 익대공신 3 등에 책록되고, 함종군(咸從君)에
봉해졌다. 우승지 평안도관찰사 이조참판으로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건주위 정벌의 결과를 알렸다. 호조,공조, 형조, 병조의 판서를
역임, 우찬성이 되었다. 1490년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북전(北殿)'을 산개(刪改)하는 데 참여, 1494년(연산 1) 우의정이
되어 양관 대제학 지성균관사 영경연사 등을 겸하고, 1496년 좌의정이
되었다.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면직되었으나 이듬해 궤장을 하사받았고,
부원군에 진봉, 기로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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