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추황(簧) : 엽의 아들, 1209년(희종
5) 성균시험(成均試驗)에 장원하고
1213년(강종 3) 문과에 급제한 후 예부 상서(禮部尙書),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등을 지냈다. 추적(適)
: 황의 아들, 문장에 뛰어났고,
민부 상서(民部尙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등을 역임항 후 시랑(侍郞) 겸 국학 교수(國學敎授)에 이르러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중국에
전파하고, 추수경(水鏡) : 이부좌시랑(吏部侍郞) 천일(天日)의 아들, 명나라에 건너가 1591년
무강자사(武康刺史)에 재임 중
다음해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병(援兵)으로 이여송(李如松)의 부장(副將)이 되어 아들 노(蘆), 추(萩)
형제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곽산(郭山), 동래(東萊)등지에서 많은 전공(戰功)을 세우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전주(全州)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戰死)하여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 => 본관을 전주(全州)로하였다.
추익한(益漢) : 적(適)의 7세손, 세종(世宗) 때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내고 향리(鄕里)로 돌아가 시서(詩書)로 자락(自樂)하다가 어린 단종(端宗)이 영월(寧越)로 유배되어 오자 머루, 다래 등을 따다 바치며
충성(忠誠)을 다 하였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살해되자 그도 따라 죽으니 세상 사람들은 당시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嚴興道)와 더불어 <살아 생전 추충신(秋忠臣)이요 죽어서는 엄충신(嚴忠臣)>이라고 일컬었다. ·추한복(漢復) : 적의 7세손이며 세종 때 한성부윤을 지냈다.
추치경(致鏡) : 한말(韓末)에
와서는 칠의사(七義士)의 한 사람, 이 충주(忠州) 장현(長峴) 전투에서 일본군(日本軍)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충절의
가풍을 이었으며, 추용만(鏞滿)과 추용소(鏞召) 형제는 합천(陜川)에서 결사대를 조직하고 일본(日本) 수비대를 공격하다 순국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추기엽(琪燁) : 전북 익산(全北益山)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윤현보와 함께 영암(靈岩), 동해(東海) 등지에서 활약한
추교철(敎哲) : 군자금 마련을 하다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추규영(圭暎)
: 독립 애국단을 조직하여 단장이 되어 동지규합에 노력하고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여 군자금 모금에 공헌하는등등 비롯하여 많은 애국열사(愛國烈士)들이
배출되었다. |
[ 인구(人口) ]
전주 22,136명, 추계 21,416명, 양지 863명. (1985년) 추계 39,994명, 전주 2,670명. (2000년 통계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