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감찰규정, 계림판관, 이성등처 관군민호를
거쳐 1370년(공민왕 19) 전라도 체복사를 역임하고 이어 공조전서(工曹典書)가 되었다.
1394년(태조 3)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건너가 구주절도사 금천요준에게 국서를
전하고 다음해 포로로 잡혀가 있던 본국인 570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
都摠官)을 거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 태조로부터 '관서부자(關西夫子)'의
칭호를 받았다.
그 후 강원도 도관찰사, 도진무, 참찬문하부사를거쳐 태종 때 승녕부윤,
좌구총제, 안동부사 등을 역임, 1413년 형조판서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 공조판서, 좌군도청제를 지내고, 판한성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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