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의 문인.
학문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으며,
1573년(선조 6) 천거로 참봉, 주부, 도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584년 교정청낭관이 되어 '경서훈해(經書訓解)'의
교정에 참여하고, 곧 낙향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그의 배후자로 무고를 박고 투옥된 후 옥사했다. 당대 저명한
성리학자로서 전정경의를 학문의 태도로 삼았고, 학문이란 구설과 문장에서
떠나 실생활에 적응시켜 실천해야 된다고 주장했으며, 특히 기절을 숭상했다.
대사헌에 추증, 진주의 덕천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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