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향리 최상저의 아들이다.
15세 때 부친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자, 도끼를
들고 추적하여 호랑이를 찍어 죽이고 아버지의 해육을 그릇에 담아 흥법산
서쪽에 안장하고 3년 동안 여막에 살았으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그의 행적이 수록되었다. 뒤에 문과에 급제하고 의종 때 기거사인에
승진하여 1153년 금나라에 가서 용흥절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1158년
국자사업으로서 국자좨주 염직량(廉直諒)과 함께 생원시를 맡아보았으며
뒤에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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