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최승(陞)은 본래 당나라 장군으로
846년(신라 문성왕 8) 신라에 기근이 들어 도둑무리가 창궐하자 당나라
무종의 명으로 병마사(兵馬使)가 되어 이를 토평하였고, 889년(진성여왕
3) 신라에서 원종(元宗), 애노(哀奴)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벌(東征),
이를 평정하여 은자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랐고 그후 예성(蘂城,
충주의 옛 이름)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충주(忠州)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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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고려시대에는
최옥(沃) : 문하시중을 지냈다 최백청(伯淸)
: 문하시랑을 지냈다. 최숙청(叔淸) 좌찬성을 지냈다. 최우청(遇淸)
: 수사공좌복야(守司空左復射)를
지냈다. 최원유(原儒) : 직제학
최렴(濂) : 검교정승(檢校政丞) 최자
: 이조전서, 최중청(仲淸) : 판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최순(洵)
: 대사간을 지낸 최빈(濱) : 언양현감으로 있으면서 청렴하고
애민하였으며, 선정을 베풀어 언양현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최맹현(孟賢)
:
1519년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지방의 외직을 거쳐 충청도관찰사에 이르렀다.
앞서 외직을 지내는 동안 부임하는 고을마다 선정을 베풀어 명성을 드높였다. ·최명선(明善) : 예조참판. ·최규석(圭錫) : 이항로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여 사림의 중망(重望)을 받았다. ·최헌영(憲永), 최동봉(東鳳) : 학행과 예문에
저명하였고, 후진양성에 전심하였으며 문집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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