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정명교(鄭明敎) 황병기(黃炳基)
등과 의병운동을 전개, 1910년 한일합방 후 최기택(崔基澤) 등 동지
6인과 함께 대붕회를 조직,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5년 일본인이
한국 어린이에게 욕을 보인 사건이 발생하자 부산 노동자 2백 명을 인솔,
일본인 가옥을 습격, 파괴했다. 1917년 대동청년당에 가입, 모험부장에
선출되고, 3 1운동 때는 서울에서 참가한 후 경남지구 책임자로 진주
함안 창안의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가 피체, 2년간 복역했다. 1921년
의령에서 불심검문하는 순사를 살해하고 일본의 천황 및 일본정부 고관을
암살하기 위해 도일하다가 피체, 다시 3년간 복역했다. 출옥 후
1944년 진주에서 구여순(具汝淳) 등 11인의 동지와 고려구국동맹회를
조직하여 활동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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