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미동보통학교를 졸업, 다음해 선린상업학교에
입학, 2학년 때 중퇴하고,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신청년(新靑年)',
'신여자(新女子)' 등의 편집을 맡았다. 3·1운동 때에 오일철(吳一澈)
등과 함께 등사판으로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박아 돌리다 체포
되었으나 곧 풀려 나왔다. 이 해에 일본동양대학 문학과에 들어가
아동문학에 전심하는 한편 <어린이>를 창간하고, 손진태(孫晉泰)
윤극영(尹克榮) 등과 색동회를 조직하여 처음으로 어린이 날을 정했다.
그 후 어린이를 위한 각종 단체를 결성하고, 강연회, 동화대회 등으로
일생을 보내다가 격무에 시달린 끝에 병사하였다. 1957년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소파상이 제정되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여러 사찰에
관음상의 석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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