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박진승(進昇)은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 박혁거세의 29세손)의 여섯째 아들인 박언화(彦華,
완산대군)의 후손(5세손 또는 9세손)이다.
그는 벼슬이 국자제주(國子祭酒)에 이르고 고려 초에 공(功)을 세워 무안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정착하여 살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무안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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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박섬(暹) : 시조 박진승의 아들, 현종 때 공신으로서 벼슬이 우복야에 이르렸으며 명신.
박승중(昇中) : 박섬의 증손, 당대 이름이 뛰어나 문명이 높았으며, 인조때 평장사에 지냄.
박문오(文晤) : 박섬의 6세손, 정승을 지냈다.
박의룡(義龍) : 박문오의 증손, 조선때 병조판서를 지냈다.
박대근(大根) : 역관으로 일본을 왕래하면서 공을 세우고,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박의장(毅長) : 임진왜란 때 경주부윤으로 제직중 경주 탈환 전투에서 적을 크게 격파한 공으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올랐으며,
호조참판에 추증되어 영해의 정충사에 제향되었다.
박홍장(弘長) :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와 순천부사를 역임
박창하(昌夏) : 시인으로 이름이 높았고, 고율시 5~6백편을 남겼다.
박징(澄) :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성부 우윤에 이르렸다.
박호(浩) :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경학에만 전념하여 예학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박두성(斗星) : 맹인들을 위해 한글 점자(點字)의 창안자이다..
박익경
박대근(大根)
조선시대에 2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