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담손(朴聃孫)의 아들이다.
1495년(연산군1) 진사가 되고, 다음해 18세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498년 사가독서를 했다. 승문원에 발탁되어
홍문관의 정자·수찬을 역임, 경연관으로 5년간 있으면서 류자광(柳子光), 성준(成俊),
이극균(李克均)의 죄상을 연산군에게 극언했다가 그들의 모함으로 투옥,
파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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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부터 산수를 주유하면서 문주로써 소일,
독서에 열중하여 많은 책을 일었고, 1504년 지제교에 임명되었으나 이
해에 일어난 갑자사화로 동래에 유배, 다시 의금부에 투옥, 사형당했다.
조선 5백 년의 으뜸가는 한시인으로 일컫기도 한다. 1506년 신원되고,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읍취헌유고(相翠軒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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