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상경했다가 마침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과 전단을 가지고 귀향하여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 후 경향 각지를 잠행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북경으로
망명하여 일제의 군사시설을 파괴 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1925년
상해로 내려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에 투신했고, 1928년에
개최된 동방무정부주의자 연맹에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1933년 3월
17일 이강훈(李康勳) 등과 함께 상해 홍구에서 주중 일본대사 유길(有吉)을
암살하려고 모의하다 가 발각되어 피체, 장기재판소에서 무기형을 선고받았고
복역중 옥사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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