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4년(태종 14) 친시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1416년 문과 중시에 급제했다. 1420년(세종 2) 수찬,
1441년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다음해 공조참판으로 정인지(鄭麟趾)와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바쳤다. 1446년 호조참판으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집현전 부제학 이조참판.
공조판서를
거쳐 1449년 예문관 대제학 영중추원사(中樞院領事)를 지내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에도 능했고 해서를 잘 써서 세종의 명으로 태종을 위해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썼다.
|